"그는 한국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감옥에 갇혔거나, 교수형에 처해졌을 것이다"

한국HR진단평가센터 승인 2023.09.05 16:36 | 최종 수정 2023.09.08 09:36 의견 0

한국은 중국이 도움을 청하기 적합한 상대였다. 일본의 식민지배로 대다수 한국인이 일본을 싫어했지만 이유는 단지 이것만이 아니었다. 이 지점에서 한국은 대만과 아주 달랐다. 1980년대 말, 대만이 민주주의 국가로 떠오를 무렵 새롭게 힘을 부여받은 대만 국민은 과거 자신들을 지배한 일본을 향해 분노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당당히 자립한 국가를 세운다는 것은, 처음에는 국민당 정부의 형태로, 나중에는 중국 공산당이 가한 위협의 형태로 자신들을 억눌러온 중국과의 분리를 의미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 민주화를 이룬 한국에서는 시민과 민주화 세력이 역사를 다시 써 내려가면서 언제나 일제 잔재 청산에 집중했다.

대만 국민은 과거 자신들을 지배한 일본을 향해 분노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당당히 자립한 국가를 세운다는 것은, 처음에는 국민당 정부의 형태로, 나중에는 중국 공산당이 가한 위협의 형태로 자신들을 억눌러온 중국과의 분리를 의미했다. <사진은 타이베이 시내의 타이베이 101 타워 모습>

다만 걸리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전후 한국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휘두른 박정희 대통령은 식민지배 당시 일본 만주군 중위로 활약한 인물이다. 역사학자 알렉시스 더든(Alexis Dudden)이 지적한 바대로, 한국에서 극동국제군사재판과 같은 전범 재판이 열렸다면 박정희는 "한국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감옥에 갇혔거나 교수형에 처해졌을 것이다." 훗날 박정희는 3대 강대국 - 일본 러시아 중국 - 이 한반도를 "집어삼키려는" 계획에 맞서 최후의 독립운동을 계획했었다며 자신의 과거를 정당화하려 했다.

- '미국, 새로운 동아시아를 꿈꾸는가'의 311쪽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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